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8/0000777180
1953년 당시 전쟁 중 부상으로 육군18연대 장교 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 김하구 예비역 대령(당시 소위)의 모습. 본인 제공.
저는 6·25 전쟁에서 소대장으로 참전했습니다. 갑종 제21기 사관후보생 출신으로 누군가는 저희들을 두고 '소모품 소위', '하루살이 소위' 등으로 불렀습니다. 이들이 전쟁 당시 소대장을 맡으면서 병사들을 이끌고 앞서 나가 싸우던 초급 장교들이었고, 그러다 보니 갑종장교 출신 소위들이 전쟁에서 엄청나게 많이 전사했습니다.
제가 임관 후 전선에 배치된 때는 1951년 여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처음으로 휴전회담이 제의가 됐던 시기였습니다. 휴전선 설정을 두고 우리나라와 북한, 미국,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만약 전쟁 당시 구축된 전선으로 휴전선이 결정돼 버린다면 그대로 끝이기 때문에 남북 모두 고지 하나라도 더 점령해 영토를 더 확보하려는 '고지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고지의 주인이 하루에 여섯 번까지 바뀌기도 했고, 낮에 국군이 점령하면 밤엔 인민군이 점령하는 상황도 꽤 있었습니다.
당연히 많은 군인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병사들 뿐만 아니라 병사들을 이끌어야 하는 소대장을 맡아야 하는 초급 장교들 또한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대장들은 흰색 표식을 방탄모 뒤에 달았습니다. 이는 적들에게 신분을 들키지 않음과 동시에 뒤에 있는 소대원들이 자신을 알아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표식이 보일 수 있으니 철모를 들고 소대원들에게 명령하다가 머리에 총알이 박히는 소대장들도 숱하게 있었던 상황입니다.
당시 제가 있던 철의 삼각지(김화, 철원, 평강) 또한 그러한 고지전 풍경과 다르지 않았었습니다. 처음 배치받은 저를 포함한 7명의 소위들 대부분은 적진과 마주보는 대대로 내려가 보병 소대장을 맡았고 저는 연대 본부에서 수색소대를 맡았습니다. 서로가 말은 안 해도 '살아서 만나기'를 기도했고 바랬습니다. 하지만 연대 본부에 남아있던 저는 그 곳에서 함께 배치를 받은 동기 소위들의 전사 소식을 속절없이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소모품처럼 하루살이로 전락해버린 것이지요.
저는 그 이후에도 많은 수색작전에 참가했습니다. 동굴을 수색해 그 속에 있던 인민군들을 공격하기도 했고, 전쟁 중에 적이 쏜 포탄에 맞아 다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전쟁을 치렀고 휴전 이후에도 계속 군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나이가 들어 이제 90을 넘긴 지금, 그 때의 전우들이 가끔 생각납니다. 너무 안타까운 건 그 혹독한 전쟁 속에서 이들을 기억할 만한 물건들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요즘 그 흔하디 흔한 사진 한 장 없습니다. 만약 그 때 저와 함께 배치됐던 동기들이 살아있었다면 추억에 남을 만한 사진이라도 한 번 찍어봤을텐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설령 그 때 전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남아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나이가 됐습니다.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저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도 6·25 전쟁을 군인으로서 겪은 사람은 없더군요. 그래서 6·25 전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전사자 유해 발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1951년 당시 '하루살이'처럼 사라져간 동기 소위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을 살아서 만날 수 있을까요? 참 그리움이 밀려드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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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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