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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휘소의 사망 이후 한국의 과학기술은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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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청꿈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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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벤자민 휘소 리)

 자발 대칭 깨짐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참(Charm/맵시) 쿼크의 질량 예측

물리우주론적 리-와인버그 경계의 계산등 의 업적으로


왠만한 노벨수상자 보다도 위대하다고 불려지는 이휘소는 한인 역사상 최고의 천재 과학자 중 하나로, 그는 20세기 후반 입자물리학에서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부서진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문제의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맵시 쿼크의 질량을 예측하여 그 탐색에 공헌하였다. 물리학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래 약 20년간 모두 110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이 중 77편의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이휘소는 현대 물리학을 10여 년 앞당긴 천재이다. 이휘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압두스 살람의 수상 소감 中


"불의의 사고로 타계하신 고 이휘소(B.W. Lee) 박사는 이 (게이지) 이론의 완성에 가장 중요하게 기여한 학자이며, 생존하셨더라면 당연히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셨을 분입니다. 전에 근무하던 프린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3층 복도에는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들 10여 명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그 한가운데에 이휘소 박사가 위치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사진 속 이휘소 박사가 후학에게 따뜻한 격려의 눈빛을 보내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이지 이론과 끈 이론", 한국물리학회지



압두스 살람/스티븐 와인버그/셸던 글래쇼(1979년 공동수상). 이휘소는 이들의 논문을 심사(와인버그), 재평가(살람)했다. 후에 이휘소는 와인버그와 가벼운 암흑물질을 공동연구하여 "리-와인버그 경계"(1977년)를 밝혀냈는데, 이것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 압두스 살람의 경우 "벤자민 리의 자리에 내가 있다."


라고 수상 연설에서 말했을 정도로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였는데 이휘소가 전자기력과 약력(약한 핵력)을 포괄하는 "경입자"연구의 문제점인 "재규격화"를 증명했으며, 이 연구 과정에서 살람의 공로를 재평가 한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이휘소는 미국 국적을 취득한 뒤로도, 조국인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놓치 않았다. 1971년 당시 한국과학원 부원장인 정근모 박사는 한국 물리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물리학 여름학교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며 이휘소 박사를 초빙하려 하였다.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던 이러한 시도에 대한 이휘소의 답신 또한 긍정적이었지만, 


그해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둘러싼 야당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와 박정희의 위수령 선포를 보며 그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독재체제가 강화되는 것에 큰 우려를 표하였다. 정근모 박사는 정권과 국민을 따로 생각해 한국과학발전을 도와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결국 1972년 초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면서 거부 했다.


"위수령 발동, 학생운동 탄압 등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로 우리가 추진 중인 여름 학교 사업을 재고하게 됩니다 ...(중략)... 여름 학교의 책임을 맡게 된다면 내가 한국의 현 정권과 그 억압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일까 걱정이 됩니다. 참으로 난처한 입장입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과학 발전을 위하여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시하는 이러한 처사들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에서 이에 관한 초청이 오더라도 수락하지 않을 결심입니다. 엉뚱한 짓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한국 국민의 장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이휘소의 사망이후 민주화의 열풍은 매우 거세졌고 결국 박정희는 자신의 부하에 의해 암살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이휘소는 유력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였지만 원칙상 죽은 사람에게는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기 때문에 이휘소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 못했지만, 만약 그가 와인버그, 그래쇼, 살람이 상을 수상했던 1979년 이후까지 생존했다면 상을 수상했을 가능성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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