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고민하는 한 여성. 그녀는 머리에 공주들이 쓰는 왕관에 화려한 옷을 입고서 암울한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제니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너무나 불안해..
마침 그녀의 시종이 들어온다.
제니의 시녀 황태녀 전하. 밖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그녀가 시종의 안내를 받아 나온 곳, 여기는 바로 대제국 백조제국의 황궁 안, 정확하게는 황궁 안에서도 황태녀가 기거하는 곳이다.
10세기 부터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천하를 다투던 20여개의 국가는 점차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북쪽에는 해상 무역으로 발전을 한 류크 왕국과 유목민족인 슈베리안 제국이 있었고 서쪽에는 문화를 크게 꽃 피우던 바로크니 제국이 존재했다. 이들은 내부의 혼란을 겨우 잠재우고 지역을 통일하였다.
하지만 15세기 말이 지나 16세기 초까지도 거대했던 동부의 땅은 여러 나라가 통합되지 못한 채 혼란에서 잠재워지지 않았다. 동부 끝의 작은 국가 백조 왕국의 8번째 왕 세르실리온은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다스리며 다른 나라 군주들에게 작은 소국이나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멸시와 경멸을 받아 왔다.
그는 대대로 이어져 온 설움에서 벗어나고자 젊은 큰 아들. 그리고 아직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여러 지역을 정복해 나아갔고 세르실리온이 죽은 이후 그의 큰 아들 파브르지겐이 9번째 왕이 되면서 부왕의 뜻을 이어 두 동생과 더불어 동부를 평정해 완전히 통일하였다. 그는 가장 강했던 브라바나 왕국의 공주 조이와 혼인을 해 더욱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1559년에 백조 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초대 황제에 올랐다. 그가 바로 스완 1세이다.
하지만 스완 1세는 자신이 황제가 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서 황권을 더욱 강화하려고 하였다. 주변 친척들을 멀리 귀양보내는가 하면 정치적 정적들과 특정한 가문을 배척했다.
이 때 황제의 맞설 수 있는 가문으로 귀족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은 것은 슈스키 가문이었다. 슈스키 가문은 오래 전 백조 제국의 시조인 국태조의 둘째 아들인 슈스키 왕자로 시작된 가문. 그러니까 황실의 먼 인척인 방계 황족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계 황족이었던 그들도 황제의 정치적 숙청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어린 조카를 몰아내 가면서 가문을 지킨 당주 10대 대공 레오였지만 그는 대대로 이어온 재상 직을 한강이라는 외척이자 신진 세력의 거두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 1579년 8월 17일. 25년간 백조 제국을 다스려 왔던 스완 1세는 황권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자신의 영욕을 다 이루지 못한 채로 눈을 감았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 점술가들의 예언을 믿거나 미신에 신봉을 했는데 그 탓으로 심신이 미약해지고 병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일찍이 아들들을 두었으나 모두 요절한 탓으로 장녀인 체르니 즉, 제니라고 불리는 공주를 일찍이 황태녀로 점찍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사후 황제의 가문인 백조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은 백조 가문의 사돈 가문인 브라바나 가문 뿐이었고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슈스키 가문을 지지하는 귀족들은 대다수였다.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귀족들이 다수였지만 시간을 끌면 언제 슈스키 가문의 당주 레오에게 빌붙을지 모르는 상황.
이런 불안한 정국 속에서 황제가 죽은지 3일 째 되는 날. 황태녀 제니와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 조이 황후, 황후의 동생 경수 브라바나는 한강 재상을 불러 난국을 해쳐나갈 방도를 찾기 위해 황궁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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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경수가 황후와 황태녀에게 도시의 상황을 알렸다.
경수 황제께서 붕어하신 이후로 도시의 치안이 말이 아닙니다. 황궁을 숙위하는 금군들은 온데간데 보이지도 않고 귀족들간의 알력 다툼으로 길거리 곳곳마다 시비가 붙고 있습니다. 약한 백성들의 집은 무뢰배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있고 심지어 어떤 집은 정체를 모를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아 불이 나 연기가 그칠 날이 없지만 우리로써는 그를 막거나 도와 줄 수단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니는 그런 경수에게 말했다.
제니 도대체 금군이나 수도의 군사들은 어디로 갔다는 말씀이십니까? 외삼촌 말씀대로라면 민심이 흉흉해 지는 게 아닙니까?
경수 그렇지요. 황태녀께서 생각하시는 바 대로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금군은 이미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라 뭐라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백조 기사단도 레오의 사병이나 마찬가지라 뭘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조이 첩첩 산중이로세....
경수 당장 우리 편에 설 수 있는 병력이 있다고 해도 저들의 세력에 비해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 특히나 일련의 모든 상황들은 황후인 조이를 불안하게만 했다.
조이 재상. 소문에 의하면 슈스키 가문의 레오 대공이 지금 여러 귀족들을 협박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공은 대행황제께서 신임하던 중신이 아니십니까? 부디 황실이 살아나갈 수 있는 해결책을 알려 주십시오.
하지만 한강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강 황후 폐하께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 드리옵니다만 결국 우리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중립적인 귀족들이 많은 이상 레오도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 입니다. 또한 마르실 국사께서 인정치 않으면 그 누구도 황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르실 국사는 백조제국 제국 최고의 수도자였다. 국사의 대관식을 받아야 한다는 건 황제 스완 1세가 만든 규칙.
경수 재상 어른. 우리 황제의 위는 사실상 백조 황가가 세습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만 엄연히 귀족들의 선출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슈스키 가문을 동조하는 귀족들이 다른 귀족들을 협박하는데다가 황태녀께서 여성임을 내세워 자신이 황제가 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은 어르신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강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왕자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조심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섣불리 움직이면 저들에게 빌미만 줄 뿐입니다.
한강은 경수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한강 황후 폐하. 일단 경수 대공의 말씀도 옳지만 우리는 옛 프랑스처럼 살리카법이 적용되는 나라는 아닙니다. 말씀 드리자면 여성의 황위 계승을 법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는 뜻 이옵니다. 그러니 우리가 원리원칙과 대의를 내세운다면 레오 슈스키의 찬탈시도는 아무런 효력이 없을 것 입니다.”
조이 그리만 된다면야 좋겠습니다만.....
경수 이거야 원.... 황제 폐하께서 급작스레 돌아가시는 바람에 유훈도 남기지 못하셨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입니다. 제 누님이신 황후 폐하는 물론 이시고 유훈을 받든 고명대신 조차 없지 않습니까? 이미 10년 동안이나 후계로 인정 된 황태녀를 제치고 역적들이 들끓으니 생각할 수록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제니 ..............
조이 황후도 제니도, 그 누구도 도시의 암흑기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한 편, 슈스키 가문 측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스키 당주인 레오는 스완 1세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다. 그나마 예전의 친분으로 인해 스완 1세가 서거 몇년 전에 레오에게 백조 기사단의 사령관을 맡겨 사실상 정계에 복귀를 시켜 주었지만 레오가 잃은 재상 직과 권위와 맞바꾸기에는 너무나 작은 대가였다.
레오는 드디어 수십 년간 품어온 황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막대한 댓가를 약속함으로써 스완 1세에게 반대하는 대신들을 거의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직접 황제제의 측근 가문이던 레이나바 가문의 당주인 도리를 찾아갔다. 레이나바 가문은 제국 서쪽의 땅인 에스프를 다스리는 가문이었는데 이들의 사병인 강군 친위대의 힘을 레오는 빌리려고 했던 것 같다.
도리는 자신의 저택의 밀실로 숨어들어 레오와 밀담을 나누었다.
도리 대공께서 원하시는 바가 뭔지 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묵은 원한을 아직도 마음속에 두고 계시는 것이 과연 온당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서도 그리고 왕자님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은 생각은 아닌 줄로 압니다.”
도리의 원론적인 의사표시에 레오는 겉으로는 원한 때문이 아님을 피력했다.
레오 백작. 그게 아니오. 그대도 잘 알다시피 황태녀는 여자요. 그런 사람이 어찌 황제가 된다는 말이오? 지금 우리나라의 서쪽에는 바로크니 제국이. 또 북쪽에는 슈베리안 제국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 실정이 아니오? 여황제가 등극하면 이를 막을 수 있겠소?
도리 하지만 그렇다고 황태녀께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흠이 있다고 해도 돌아가신 황제 폐하의 아우님이신 평도 왕자님이 또한 계시지 않습니까? 그것도 아니 된다면 스완 가문의 방계 가문으로써 황위를 이어나가게 한다면 별 탈은 없을 것입니다.
레오는 너무 답답했다.
레오 이거야 원 참. 왜 이리 답답하단 말이오?! 방계는 우리 슈스키 가문도 해당합니다. 내가 왜 아니 되겠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그대가 데리고 있는 에스프 친위대로 날 좀 도와주시오.
하지만 도리는 일어나더니 고개를 돌렸다.
도리 제가 어찌 역적질을 돕는다고 여기십니까? 일개 변방귀족인 제가 이만큼 출세한 것은 다 대행황제께서 어여삐 여기신 덕입니다. 저는 불의한 일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 말씀 아니 들은 것으로 하지요.
레오 백작, 정말 나를 돕지 않으시겠다는 건가? 나와 손을 안 잡겠다고? 당신 같은 젊고 유망한 인재가 결국 썩어빠진 황실의 주구 노릇이나 하겠다는 말씀이신가?
도리 주구라니요. 누가 들으면 진짜 황실이 썩어빠진 줄 알겠습니다. 저는 말씀드렸지만 황실에 충성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대공께서도 반역의 꿈은 접으시고 황실의 종친으로서 새로운 여황제를 받들어 모시고 백조제국의 충신으로 영원히 남으십시오.
레오는 더 이상 도리를 설득 하는 것이 어렵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냉랭하기 그지 없었다.
레오 좋소......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하지만 나의 제의를 거절한 대가는 반드시 치루게 될 것 이오!
2편 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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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 와서 보는게 편할 듯.... 22화까지 올라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