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다
영화 <건국전쟁>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 있는 것이 신기했다.건국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니 경건한 마음으로 볼 태세가 되어 있었다.영화 전편이 기록 영상이나 문서를 조명하는 것 외에는 열댓명 남성들의 증언과 분석만으로 되어있지만, 시종 흥미진진했다. 무려 90년을 쉴새없이 몇 사람 몫의 일을 하고 살았던 분이라서, 그의 생애와 업적을 100분으로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고 우리나라와 국민이 그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는 우리 국민 대다수에게, 그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기본] 지식으로 생각했던 것이 틀렸음을 깨우쳐주었다.그것도 fact를 우회할 수 있는 [극화]를 통해서가 아니고, 가감의 여지가 없는 당시의 영상과 문서 자료를 통해서.
필자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독서를 좀 한 편이다.그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국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이런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6.25 동란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김일성 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남아 번영을 이룩한 것이 그가 고군분투로 유엔의 참전을 이끌어내고 한미동맹을 성취하고 미국의 막대한 원조를 따낸 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 내가 몰랐던 중요한 사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내가 모르던 천금같이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그것은 1950년 6월 28일 새벽의 한강다리 폭파에 관한 진실이었다.
대부분 국민이 이제껏 이 사건에 대해 알고있는 [상식]은, 6.25가 나자 이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방송으로 공산당이 쳐들어왔지만 국군이 곧 물리칠터이니 걱정 말라고 거듭 안심을 시키고는, 서울이 함락되기 직전에 한강 인도교를 폭파해서서 다리를 건너던 피난민 800여명을 죽였다는 주장이었다.이 이야기는 반세기 동안 나에게 얼마나 많은 비애를 주었는지!
나는 이 이야기를, 대통령이 차마 서울시민들에게, 적이 쳐들어오는데 막을 방법이 없으니 빨리 도망가라고 해서 서울을 혼란의 도가니를 만들 수는 없으니 국군이 곧 물리칠 것이라고 다독였지만, 사흘 후에 적의 서울 진입을 지연시킬 방법이 한강다리 폭파 밖에 없어서 폭파했으리라고 생각했다.그 때 대통령의 심경이 어떠했겠나 싶기는 했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라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밝혀 준 진실은, 적이 38선을 넘자 어나운서는 ‘북에서 침공했으나 미군에게 구조를 요청했다’라고 방송했고, 다리를 폭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피난민들이 더 이상 다리로 진입하지 못하게 차단하고 다리 아래에 부교를 만들어 피난민은 그리로 우회하도록 했다는 것이다.이로서 나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쇳덩어리가 벗겨졌다.
이대통령은 6.25전란 내내 대국민연설을 279회 했다고 한다.전란 중 그의 하루하루는 사투의 나날이었다. 그는 70대 후반의 노인이었지만, 국민에게 전세를 알리고 함께 이겨내자는 호소를 멈추지 않았다.
■ 좌파의 이승만과 국민 사이 갈라놓기
국민과 건국대통령 사이에 간격이 만들어진 또 하나의 논점은 4.19혁명 당시 발포명령이었다.
나는 4.19에 대해서는 바로 알고 있었다. 1960년에 필자는 만 12세로 중학생이었다.이박사가 4월 23일에 병원으로 학생들을 위문하고 눈물을 흘리고, 26일 학생들의 희생에 대해 책임지고 하야하는 것을 직접 언론보도를 통해 접했다.그럼에도 [이승만 악마화] 를 하는 인간들에 의해서 학생들의 희생에 대한 이대통령의 애통함, 그리고 그가 권좌에 집착하지 않고 깨끗이 하야해서 사태가 수습될 수 있는 길을 연 것 등은 모두 지워졌던 모양이다.
발포명령은 이대통령이 내렸을 리가 없는 것인데, 좌파는 발포명령을 당연히 이대통령이 내린 것으로 단정했다.그리고 그가 하와이에서 가난하고 병든 몸으로 얼마나 애타게 귀국을 갈망했는지에 관한 모든 정보를 막아, 그에 대한 국민의 연민마저 차단한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 국민 모두가 4.19에 대한 이대통령의 통한의 심경을 느끼고 그와 화해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이제 우리는 알게 됐다
좌파는 이렇게 이승만 대통령을 악마화하고 의기양양했을까?그들이 한 행동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서 어버이를 빼았아 고아를 만들고 국민의 가정을 쓰레기 구덩이로 만드는 것이었다.그리고 그들 스스로를 후레자식을 만드는 일 (self-bastardizing) 이었다.
그들의 악랄한 간계로 인해, 지난 수십년간 새 세대는 조국에 대한 신뢰도 긍지도 기쁨도 없이 나라를 경원하고 외면하며 살았다.국민과 나라를 이간시킨 이 극악한 죄과를 그들은 어떻게 속죄하려는가?좌파 학자, 교사들의 세뇌가 어찌나 극성스럽고 집요했던지, 지금 50~60대까지도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욕할수록 자신의 정의감이 입증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국민은 뒤늦게 대한민국식 농지개혁이 어째서 북한 방식보다 우수하고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이었는지, 북한이 (또는 주사파가) 자랑하는 친일파 청산이 사실은 신생 대한민국에서 훨씬 더 제대로 이루어졌고, 북한에서는 오히려 친일파가 대우받고 중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남한을 공산화하려는 폭동이었던 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 등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진압이었음도 인식하게 해준다.
일본 패망과 함께 주둔했던 미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를 무릅쓰고 1949년 6월에 철수하고 말았다.미군 철수 다음 해, 그가 예견하고 두려워했던 6.25가 터졌을 때 그의 비애는 어떠했겠는가? 70평생 편한 날 없이 분투해서 겨우 세운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봉착하니, 하늘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불굴의 투지와 정세감각과 뚝심으로, 그 처참한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냈다.비록 미국에 대한 요구는 너무나 많으면서도 그들 말을 잘 듣지 않아, 미국에 의해 축출될 뻔하기도 했지만 말이다.이박사가 깔아 준 한미동맹의 레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맨발로 자갈길을 걸어 근대로 향했어야 할 것이다.
■ 한 세기를 풍미한 거인
이승만 대통령은 한 세기를 풍미한 거인이다.그러니, 이 영화가 다루지 못한 부분이 엄청 많다.☆ 모든 선교사·교사들이 경탄한 배재학당의 영재☆ 독립협회의 스타 연사☆ 불과 6년만에 미국 명문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획득한 수재 중의 수재☆ 무수한 불편과 애로에도 불구하고 무국적자이기를 고집하면서 미국을 누비며 일본의 악랄함과 비열한 야망을 인식시켰던 독립투사.
이대통령의 생애에는 이런 풍운아의 생애에 걸맞는 풍성한 일화가 많다.이 영화가 길을 텄으니, 앞으로 더많은 연구를 통해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정치적 신념과 활동, 그리고 프란체스카 여사의 회고록이 보여주는 그의 개성과 인간적 매력 등을 우리 국민들이 쉽게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故 유영익 교수를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간 이대통령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언론인, 학자, 사회 중진들의 노고에 새삼 감사했다.모두 이 영화의 성공에서 큰 위로 받으시기 바란다.
고 유영익 교수는 4.19때 대학생으로 시위에 참여했었는데, 1990년대 초에 이박사의 양자 이인수 박사로 부터 이화장에 있는 이대통령의 모든 유품과 문서를 무제한으로 활용해 연구하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어느 사학자가, (개인적 호불호가 여하했던간에) 현대사의 거인, 모국의 초대대통령에 대한 본격적 연구기회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유교수는 즉시 수락하고 연구를 시작하자마자 곧 이대통령이라는 인물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30년을 이대통령 연구에 바쳤다.
그는 그로 인해 좌파로부터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았다. 연세대에서도 학생들에게 배격 당하기도 했지만, 이승만 연구 2세대 제자를 많이 양성했다.연세대 은퇴 후엔 한동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매주 그가 강의를 하러 내려가면, 데모대가 그의 강의실 진입을 막고 돌아가라고 아우성쳤다고 한다.하지만, 한 주도 강의를 중단한 일이 없다고 한다.
2013~14년 국사편찬위원장으로서 처참하게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하지만 좌파의 방해는 너무나 극렬하고, 정부나 우파사회의 지원은 없다시피 했다. 그는 절망하고 사임했다. 그 후 건강이 악화되었고, 작년에 돌아가셨다. 이 영화의 성공을 보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텐데, 참으로 안타깝다.
그 외에, ☆ 일찌감치 이승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보급하고 위해 다년간 <이승만 포럼>을 주최해론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 선생, 이승만 연구 서적 출판에 열과 성을 다해온 안병훈 (기파랑 대표) 선생☆ 김구 가 더 큰 인물로 부각될 줄 알고 시작한 <이승만과 김구>의 집필과정에서 두 인물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손세일 선생☆ 여러 해 뛰어난 연구자에게 이승만 연구 상을 시상하고 격려한 경인여대의 김길자 총장☆ <이승만학당>을 창설해 유튜브와 강연을 통해 이대통령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보급하고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시정하기 위해 다년간 정진해 온 이영훈 교수 등.이들의 공헌도 빛을 보게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2/18/2024021800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