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 담은 담론
‘한국부부’ 위장했다가 덫 걸린 北 간첩단
방송대담 D씨와 배우자, 오해 자초 말기를
1997년 10월27일 오전 11시30분경, 울산의 K호텔 커피숍에서 난데없이 한 무리의 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 요원들이 권총을 빼드는 영화 같은 장면이 벌어졌다. 검거된 이들은 최정남(당시 35세)‧강연정(28세). 평범해 보이는 이들은 사실 북한이 보낸 남파(南派) 공작원들이었다.
수사결과 등에 의하면 1962년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최정남은 대학 재학 중 간첩으로 선발됐으며 1989년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1969년 평양에서 태어난 강연정은 고등중학교 졸업 후 첩자로 뽑혔으며 1994년 노동당 당적을 취득했다. 10년 가까이 순안초대소 등에서 훈련 받은 둘은 1990년 11월에 실제로 결혼했으며 남혁(1990년생)이라는 아들도 뒀다.
부부는 볼모 겸 아들을 평양에 두고서 1997년 7월30일 오후 7시께 남한으로 향했다. 권총 2정, 우리 돈 기준 공작금 3000만원, 가짜 주민등록증 등을 갖고 남포항을 떠난 이들은 8월2일 오후 9시 무렵 경남 거제 앞 공해상(公海上)에서 잠수정으로 갈아탔다. 한미(韓美) 추적망을 따돌린 둘은 오후 11시께 거제 해안 약 500m 지점에서 수중침투장비를 착용하고서 헤엄쳐 상륙했다.
뭍에 오른 부부는 약 한 달 가까이 경북 경주, 부산 등 전국을 돌면서 드보크(dvoke‧간첩활동을 위한 각종 물품들을 산중 등에 숨기는 장소)를 설치했다. 그리곤 ‘평범한 한국인’으로 위장한 채 8월2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숙소를 마련하고서 고정간첩 A(현재 전향)와 접선(接線)했다. A는 중학생 때 북한정권에 충성을 맹세하고서 유사시 서울지하철을 사보타주(sabotage)할 목적으로 40년 가까이 서울지하철공사에서 근무 중이었다.
부부는 A에게 북한 조국통일상 수상 소식을 전달하고 김정일에게 바치는 충성맹세를 받아내는 한편 새로 나온 난수표(亂數表) 해독법, 신형 무전기 사용법 등을 가르쳤다. 특히 지하철 지하구간에 고이는 물을 퍼내는 집수정(集水井) 장치를 파괴해 유사시 서울지하철을 마비시키는 기술을 전수했다.
언뜻 치밀하게 은폐되는 듯했던 부부의 실체는 이들이 한 NL 주사파 인사와 만난 점이 드러나면서 발각됐다.
1997년 10월21일, NL 계열 단체에서 활동하던 B(35세)는 돌연 안기부에 “수상쩍은 두 사람이 날 찾아와 함께 북한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고발했다. B가 부부를 고발한 표면상 이유는 “둘이 안기부 프락치 같아서”였지만 정확한 내막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일각에서는 B야말로 안기부에 포섭된 인물로서 부부에게서 수상쩍은 냄새를 맡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아무튼 B의 고발로 인해 부부의 정체는 드러났다. 안기부는 부부가 북한 간첩단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동선(動線)을 추적했다. 그리고 마침내 K호텔 커피숍에서 B와 함께 태연히 찻잔 기울이던 부부를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손님으로 위장하고 있던 수십 명이 신호와 동시에 번개 같이 권총 겨누자 아연실색한 강연정이 내뱉은 말은 “여보..”였다고 한다. 강연정은 은밀한 곳에 숨기고 있던 독약 앰플을 기습적으로 삼키고 자진(自盡)했다. 혐의를 시인하고 전향한 최정남은 국군 정보사령부(KDIC)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에 두고 온 아들의 생사(生死)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사실 부부의 수상쩍은 행동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8월3일에는 거제에서 버스에 올라 요금통에 돈을 넣은 뒤 잔돈을 받으러 한 동안 서 있어 운전기사의 의심을 샀다. 부부는 기사가 직접 잔돈을 주는 대신 요금통 옆으로 쏟아져 나온다는 걸 몰랐다.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서고도 막상 남한 말투 사용에 자신이 없는 탓에 주문도 안 시키고 입 꾹 다물어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친북 의혹의 최모 씨로부터 명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의 C씨 배우자 D씨가 7일 모 방송 대담에서 오랜 침묵을 깨고 입장을 내놨다.
그런데 명확한 해명 및 “이유 불문하고 근심을 드려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식의 진지한 90도 사죄 대신 변명 일색이었다는 아쉬움‧비판이 여야 막론 쏟아진다. 세간이 비판하는 건 ‘C가 받았다’는 것 그 자체인데 ‘몰카범죄’로만 몰고 갔다는 지적이다.
D씨의 주장은 곧 ‘아내가 받긴 받았는데 최 씨의 범죄에 의해 받은 것이므로 아내는 무죄’라는 이상한 논리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최정남‧강연정이 “우리가 간첩 맞긴 한데 B의 함정에 걸린 것이므로 무죄”라 주장하는 꼴처럼 보일 수 있다. 최 씨가 아무리 계획적으로 선물을 건넸다고 해도 C씨가 받은 이상 C씨의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등 위반혐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도리어 이번 대담에서 논란거리 하나를 새롭게 공론화(公論化)시킨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D씨는 “아내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최 씨가) 아버지와 동향이라고 ‘친분’을 얘기하면서 (접근해) 왔다” “OOO이나 OOO 부인이 누구한테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보수우파 정당 최고위급 인사 배우자 집안이 ‘친북 의혹’ 인사와 근래까지도 오랜 기간 ‘교류’해왔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사실 C‧D 부부의 이상한 행적은 그간 한 둘이 아니었다는 평가가 있다. C씨는 한 좌파 성향 유튜브채널 인터뷰에서 ‘우리가 좌파였다. 좌파의 선봉장이었다’는 취지로 밝혔다. ‘보수궤멸’을 주장해온 D씨의 친정(親庭) 격 정당의 최고위급 인사 두 사람은 무수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 한 명도 구속되거나 처벌받지 않고 있다.
C‧D 부부의 친정 격 정당 관련 속마음을 둘러싼 억측들이 정계‧사회에 나도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대담으로 인해 두 사람은 보수우파 진영으로부터 더 큰 의심의 눈치를 받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C‧D 부부가 결백하다고 믿고 싶긴 허나 필자도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떳떳하다면 더 이상 오해받을 짓 하지 말길 바란다. 이 지경이 된 상황에서 더 이상 받을 오해가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본 개담은 CD 부부를 최정남 강연정에 빗대려는 의도는 결코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문맥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